신라문화와의 만남/신라 황금문화

[신라 황금문화]신라인과 황금

해목령 2015. 8. 1. 22:20

신라인과 황금,

그리고

무덤의 부장품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빛을 발하는 금(金)은 예로부터 영원함과 고귀함의 상징으로 인식 되었다.

신라인들도 죽은 이의 영원한 안식과 내세에서의 고귀한 삶을 위해 각종 금제품을 무덤 안에 묻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65년 금성 서쪽 시림(始林) 숲속의 나뭇가지에 걸린 금궤에서 김씨의 시조로 추앙되는 알지(閼智)가 나왔다.

이는 돌무지 덧널무덤 단계인 4~6세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금의 존재와 김씨 집단과의 관련성을 짐작케 한다.

 

일성왕(134~154)때인 144년에 민간의 금은주옥(金銀珠玉) 사용을 금지했던 사실은 신라 사회에 일찍부터 금이 유통 되었음을 알게 한다.

4~6세기에 축조된 신라 능묘의 수많은 황금 제품은 왕과 왕족 등의 지배집단이 지녔던 금에 대한 특별한 인식과 그에 부여했던 상징과 의미를 보여준다. 8~9세기 신라가 당(唐)에 금이나 각종 금제품을 선물로 보냈다는 기사에서도 활발히 금을 산출하고 금제품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720년에 지어진 일본의 「일본서기」에는 신라를 "눈부신 금은채색(金銀彩色)이 많은 나라" 또는 "금은(金銀)의 나라"로 묘사하여, 고대 일본인들의 눈에 비친 신라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금귀걸이

경주 황남동 151호 무덤(신라 6세기)

길이 7.4cm

 

황남동 151호 무덤

16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발굴하였다.

이 무덤은 보문동 합장분 처럼 1기는 돌무지덧널무덤이고, 다른 1기는 굴식돌방무덤 구조로서 6세기 전반경에 조성되었다.

여러 형식의 귀걸이들이 출토 되었다.

 

▲금귀걸이

경주 황오동(신라 6세기)

길이 7.9cm

무게 31.7g

 

광복 이후 1955년까지 국립박물관이 경주 황오동 일대에서 수습한 장신구 들이다.

이 가운데 굵은고리 귀걸이는 아주 작은 고리들을 서로 붙여 둥근 공처럼 만들고 달개를 달았다.

그 아래쪽에 2개의 크고 작은 드림을 매달았다.

달개의 일부와 큰 드림의 테두리에는 눈금을 촘촘히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전체적으로 금관총 출토 금귀걸이와 비슷 하면서도 세부 처리가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금제 드리개

경주 황오동 4호 무덤(신라 6세기)

길이 9.6cm

무게 8.6g

 

황오동 4호, 5호 무덤

1961년 10월 문교부에 문화재관리국이 설치되고,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발굴조사 사업도 변화를 맞았다.

경주지구 매장문화재 정리조사 계획에 따라 문화재관리국이 1962년에 팔우정로타리 부근의 황오동 4호, 5호분을 수습 조사 하였다.

 

출토품 가운데 4호 무덤의 드리개는 가는 중심고리 아래 작은 고리 몇 개를 서로 붙여 둥근 샛장식을 만들고 금판을 둥글게 말아서 만든 길쭉한 금봉을 그 아래에 끼워 넣었다. 맨 아래에는 얇은 금판을 가늘게 오려 비틀듯이 꼬아 수실을 드리운 것처럼 늘어 뜨렸다.

이와 비슷한 예가 금령총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신라 드리개 제작기법의 다양함을 보여 주고있다.

 

▲금귀걸이

경주 노서동 138호 무덤(신라 6세기)

길이 5.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서동 138호 무덤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 국립박물관에 의해 발굴 되었다.

끝이 뾰족한 드림이 3개 달린 가는 고리 귀걸이와 함께 하트형의 드림이 달린 가는고리 귀걸이도 출토 되었다.

후자의 경우, 샛장식에 호박(琥珀)이 감입되어 있어 독특하다.

중간에 호박을 감입한 비슷한 예로는 경주 황오동 34호 무덤의 출토품이 있다.

 

▲금귀걸이(왼쪽)

경주 황남동 151호 무덤(신라 6세기)

길이 7.8cm

무게 37.1g

 

▲금귀걸이(가운데 둘)

경주 황남동 151호 무덤(신라 6세기)

길이 7.6cm

 

황남동 151호 무덤

16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발굴하였다.

이 무덤은 보문동 합장분 처럼 1기는 돌무지덧널무덤이고, 다른 1기는 굴식돌방무덤 구조로서 6세기 전반경에 조성되었다.

여러 형식의 귀걸이들이 출토 되었다.

 

 

▲금귀걸이(왼쪽)

경주 황오동 4호 무덤(신라 6세기)

길이 5.5cm

무게 8.8g

 

▲금제 드리개

경주 황남대총 북분(신라 5세기)

길이 19.8cm

무게 25.6g

 

드리개는 형태상 귀걸이와 유사하나, 길이와 출토 상태에 따라 구분이 가능하다.

드리개는 보통 관이나 허리띠 등에 부속되는 것이 특징으로, 위아래로 길쭉한 나선모양의 샛장식 여러 개가 연결된다.

황남대총 북분에서는 다종다양한 금드리개 10여 쌍이 나왔다.

 

▲금귀걸이

경주 황남대총 북분(신라 5세기)

길이 8.6cm

무게 29.4g

 

신라에서 가는고리 귀걸이는 남성이, 굵은고리 귀걸이는 여성이 주로 착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황남대총에서는 다양한 형식의 금귀걸이들이 출토 되었다.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북분에서 출토된 굵은고리 귀걸이의 경우, 샛장식을 이중으로 연결하여 드림이 긴 것도 있고,

금관총 출토품처럼 샛장식과 드림을 2개씩 매단 복잡한 것도 있다.

 

▲금귀걸이

경주 황남대총 북분(신라 5세기)

길이 6.6cm

무게 16.5g

 

▲금귀걸이

경주 황남대총 북분(신라 5세기)

길이 7.9cm

무게 17.5g

 

▲금귀걸이(오른쪽)

경주 황남동 442번지 무덤(신라 5세기)

길이 4.8cm

무게 5.4g

 

국립박물관이 1964년에 조사한 황남동 442번지 파괴 무덤(황남동 145-1호 무덤)에서 출토된 비교적 초기 형식의 가는고리 귀걸이다.

샛장식 아래쪽 드림에는 둥근 장식 1매와 자그마한 오목원판 2매를 양쪽에 달았다.

 

▲금제 드리개

경주 황남대총 북분(신라 5세기)

왼쪽둘 길이 24.8cm

중앙둘 길이 25.9cm

오른쪽하나 길이 16.5cm, 무게 11.5g

 

 

 

▲금제 드리개

경주 월성로 가-13호 무덤(신라 4~5세기)

길이 26.4cm

무게 15.4g(좌)

 

월성로 무덤군

경주시내의 대형 능묘 발굴이 일단락된 이후인 1980년대에 시내 중심지에서 주목할 만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경주시 월성로 개수공사를 위한 수습발굴이 1985년 국립경주박물관과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진행 되었다.

출토품 가운데 가-13호 무덤의 금제 드리개는 현재까지 알려진 신라 드리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굵은 중심고리 아래로 여러 개의 달개를 매단 나선모양 장식을 연결하여 샛장식으로 삼았다.

아랫쪽에는 구체와 입방체, 원통장식이 연접되어 매달려 있다.

특히 작은고리를 여러 개 붙여 만든 입방체의 네면에는 푸른 유리구슬을 끼웠다.

 

 

 

▲금귀걸이

경주 천마총(신라 6세기)

길이 5cm

무게 10.8g

 

천마총에서는 널 안과 그 주변, 덧널 내부, 부장품 궤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귀걸이가 출토되었다.

하트형 드림이 달린 귀걸이(아래)는 무덤 주인공이 착용하였던 것으로, 서봉총과 보문동 합장분에서도 비슷한 귀걸이가 출토된바 있다.

또다른 귀걸이(위)는 순장자의 것이거나 일종의 봉납물로 추정된다.

가는고리에 작은 고리를 걸고, 다시 속이 빈 둥근 샛장식과 뾰족한 모양의 드림을 연접하여 매달았다.

표면에는 금알갱이와 돋을띠를 붙여 장식하였다.

 

▲금귀걸이

경주 천마총(신라 6세기)

길이 6.2cm

무게 20.1g

 

▲금귀걸이

경주 황오동 14호 무덤(신라 5세기)

길이 5.7cm

무게 12.4g

 

황오동 14호 무덤은 1934년 발굴되었다.

이 무덤의 제1곽에서는 이른 형식의 금귀걸이가 출토 되었다.

이 귀걸이는 제1곽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축조된 제2곽에서 나온 것이나, 역시 오래된 형식의 특징이 보인다.

 

 

▲금팔찌

경주 노서동 215번지 무덤(신라 6세기)

지름 8.3cm

무게 108.8g

국립중앙박물관(보물 제454호)

 

바깥쪽에 작은 원형 돌기가 있는 팔찌는 식리총, 금령총, 보문합장분 등에서 출토 되었으나, 이처럼 용이 새겨진 예는 드물다.

 

 

▲손잡이 달린 금동제 그릇

경주 금관총(신라 5세기)

높이 11cm

국립중앙박물관

 

손잡이가 달린 둥근 그릇이다.

구연부에 은제 테두리를 덧대었고, 별도의 손잡이를 꽂는 부분도 은판으로 감쌌다.

손잡이와 몸통의 접합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보석장신구

경주 서봉총(신라 5세기)

길이 5.2cm

국립중앙박물관

 

수정, 호박, 마노, 유리, 경옥, 흑옥, 잡자리구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걸이나 팔찌에 상요된 장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리팔찌

경주 서봉총(신라 5세기)

지름 7.6cm

국립중앙박물관

 

거푸집을 이용해 제작하였으며 내부에 기포가 있다.

 

▲금귀걸이

경주 서봉총(신라 5세기)

길이 7.4cm

무게 29.1g

국립중앙박물관

 

▲금팔찌

경주 금관총(신라 5세기)

지름 7.5~7.9cm

무게 59.6g

국립중앙박물관

 

금관총에서는 금팔찌 12개와 은팔찌 17개가 출토 되었다.

속이 꽉 찬 금이나 은막대를 구부려서 만들었고, 표면에는 눈금과 같은 무늬를 새겼다.

 

 

▲금동제 물괴 장식

경주 금관총(신라 5세기)

길이 30cm

무게 62.1g

국립중앙박물관

 

금동제 물고기 장식은 허리띠에 매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고기 내무 전체를 맞새김하여 무늬를 베풀었으며, 곳곳에 달개를 달았다.

발견 당시 결실된 상태였던 일부는 최근에 보존수복 하였다.

 

 

 

▲금동제 장식

경주 금관총(신라 5세기)

길이 11.3cm(삼각형), 13.2cm(곡선형)

국립중앙박물관

 

금동제 장식은 출토 당시에는 각각 두개가 맞붙어 있었고, 안쪽에 직물이 붙어 있었다.

새의 날개와 같은 곡선형 장식에는 용무늬를 새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