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탐방/경북지역

[봉암사]태고 보우 승탑

해목령 2015. 3. 28. 17:52

석종형승탑(태고 보우 승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5호

 

봉암사에서 원오국사의 승탑이 있는 곳으로 오르는 중간에 작고 단순한 석종형 승탑이 있다.
고려말 승려였던 태고 보우의 승탑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승탑으로, 지대석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157Cm의 네모난 형태이며, 몸체의 지름은 98Cm 이다.

조선후기에 지은 봉암사 사적기에는 "지눌(知訥 1158~1210)의 부도는 지금의 사찰 금색전(金色殿) 동쪽에 있다"고 하였지만,
보조 지눌의 모든 기록에 의하면 봉암사에서 생활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태고집》에 의하면 중흥사, 양산사(봉암사), 사나사, 소설암 등 네 곳에 누구 사리를 나눠 모셨다는 기록과
두 차례(세수 61세, 81세) 봉암사에 와서 중창불사 하였으며, 처음으로 사찰 경내에 모신 점으로 미루어 보아 '태고 보우(1301~1382)의 승탑'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모양의 승탑과는 대조적으로 승탑 앞에 놓인 배례석에는 세심하게 새긴 아름다운 문양이 있다.

 

태고 보우(1301 ~ 1382)

고려 말기 스님. 태고(太古)는 호이다. 속성은 홍(洪)이며, 홍주 사람이다.
13세에 양주 회암사에서 광지에게 출가하고, 가지산 하총림(下叢林)에서 도를 닦아, 26세에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한다.
용문산 상원암ㆍ성서(城西)의 감로사에 고행 정진하였고, 1337년(충숙왕 복위 6) 송도 전단원(栴檀園)에서 참선하다가 다음 해 정월에 크게 깨닫는다. 이에 삼각산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을 짓고 있으면서 태고라 호(號)하고 태고암가를 지었다.

1346년(충목왕 2) 중국에 가서 호주 하무산 석옥청공(石屋淸珙)의 법을 잇고 동국(東國) 임제종의 초조(初祖)가 되다. 다음 해 본국에 돌아와 용문산 소설암에 있었다. 공민왕이 사신을 보내어 법을 묻고, 왕사(王師)를 삼아 광명사에 원융부(圓融府)를 두고 9산(山)을 통합하여 1종(宗)을 만들게 하였으나, 뒤에 사퇴하고 소설암으로 옮기다.

신돈(辛旽)이 투기하여 속리산에 금고(禁錮)되었다가, 신돈이 죽은 뒤에 국사가 되었다. 우왕 8년 12월 24일 소설암에서 입적하니, 세수 82세. 법랍 69세 였다. 시호는 원증(圓證)이고, 탑호는 보월승공(寶月昇空)이다.

원증국사탑비(圓證國師塔碑)가 태고사에 있다.(2012,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