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 이야기/사찰벽화

[사찰벽화]변산 월명암

해목령 2015. 1. 6. 08:30

 

 

부설거사 이야기


부설거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사람으로
성은 진이고 이름은 광세 였다.
어려서 출가하여 경주 불국사에서 원정의 제자가 되어
영조,영희 등과 함께 지리산 천관산 능가산 등지에서 수년동안 수도하다가
문수 도량을 순례하기 위하여 오대산으로 가던중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들에 있는 두릉의 구무원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그집 딸인 묘화는 십팔세 였는데 나면서 부터 농아 였으나
부설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열렸다.
부설을 사모하여 함께 살고자 하였으나
승내의 신분으로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자
자살을 기도하니
"
모든 보살의 자비는 중생을 인연에 따라 제도하는 것이다.

그 후 십오년을 살면서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을 낳았는데
다른 일들은 모두 부인에게 맡기고
별당을 지어 수도에만 전념 하였다.

 

 

그 뒤 몇해가 지나고 영조와 영희가 찾아 왔을때
세사람은 서로의 도력을 시험하게 되었다.
질그릇 세개에 물을 가득 채워서
줄에 매달아 두고 영희와 영조가 병을 치자
병이 깨지며 물이 흘러 내렸지만
부설이 병을 치자 병은 깨졌으나
물은 흘러 내리지 않고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부설은 거사로서 열심히 수행하여 그 공덕이
스님을 능가했던 것이다.

 


부설은 참된 법신에 생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는
설법을 한뒤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영희와 영조가 다비하여 사리를 묘적봉 남쪽에 안치하였다.
아들 등운과 월명은 출가하여 도를 깨우쳤으며
등운은 계룡산에 등운암을
월명은 변산 지금의 월명암을 짓고
부인 묘화를 십십세까지 살다가 죽기전에
집을 보시하여 절을 지었다 한다.

 

 

'삼국유사'에는 기록되진 않았지만 불교 설화에 의하면,

부설거사는 본인과 아내, 아들과 딸 일가족이 모두 깨달음에 이르는 '엘리트 가족'이다.

이 중 특히 딸 월명과 아들 등운은 용맹정진 중 살인까지 저른 내용이 전해진다.

 

등운과 월명 남매가 출가해 불도를 닦는 중에 절의 부목이 월명에게 욕정을 품었다.

월명이 오빠 등운에게 이를 상의하자 등운은 부목을 위한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를 허락하라고 조언한다.

'화엄경'에서 관세음보살이 바수밀다라로 화현해 성(性)으로 중생을 제도했듯, 그러한 보살의 길을 가라는 의도에서 였다.

 

이에 월명은 부목에게 세 차례 몸을 허락했다. 그럼에도 부목은 그 참 뜻은 알지 못한 채 끝도없이 월명을 졸라댓다.

마침내 월명 역시 욕망 앞에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철저한 수행자라도 인간이면 누구나 당면할 수밖에 없는 욕망의 근원과 마주하게 된것이다.

 

이에 월명과 등운은 부목을 아궁이에 가둬 죽이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 수행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지독하리만치 철저하게 배제한 것이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정진해 마침내 일주일 만에 깨닫음을 얻는다. 이 싯점에서 살인을 하면서 까지 깨달음을 얻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살생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할 수 없는 행위 이기 때문이다.

 

[법보신문에서 발췌]